크롬 브라우저를 노리는 애플의 손자병법: 프라이버시로 시장 침투
최근 온에어되는 애플의 프라이버시 캠페인은 아주 노골적이고 대담합니다. 크롬 브라우저가 목표임을 대놓고 밝히고 있으니까요. 더 무서운 것은 이 캠페인은 단지 크롬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애플은 더 큰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우선 약한놈부터 팬다 - 크롬 브라우저
브라우징이 감시당하고 있는 섬뜩한 상황들을 몰입감있게 표현한 영상을 애플은 이미 유튜브에 올려놓았습니다. 많은 유저가 있는 공간에 영상을 올려놓아서 넓은 범위를 커버한다는 점, 그리고 어떤 브라우저를 특정하지는 않고 광범위한 위험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폭격 전술입니다.
애플은 이 영상 폭격으로 먼저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다음 그 자리에 지상군을 투입합니다. 프라이버시 캠페인의 광고(commercial)가 그것입니다. 폭격이 잘 된 전장에 투입된 지상군은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임무가 뭔지는 광고를 클릭하고 랜딩 페이지로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크롬 브라우저를 딱 찍어서 비교하는 것이 보이죠.
왜 이 시점에 드디어 크롬 브라우저를 압박하기 시작했는지 알아볼까요?
물에빠진 구글 앞에서 춤추는 애플
애플이 프라이버시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 2019년입니다. 이 캠페인은 구글과 안드로이드가 내재한 약점을 아주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것이라서, 구글도 같은해 Privacy Sandbox 이니셔티브를 시작합니다. PS는 아래와 같은 기술적인 설계로 사용자들이 프라이버시 침해 없이 플랫폼을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선언이었죠.
- 사용자 추적에 사용되는 서드파티 쿠키를 완전 제거
- 사용자 추적에 사용되는 안드로이드 단말기 광고 식별자 완전 제거
그런데 2024년 7월 여러 규제기관과 광고업계들의 압박 끝에, 구글은 서드파티 쿠키를 제거하겠다는 목표를 철회합니다. 서드파티 쿠키를 브라우저에서 유지하되, 사용자가 쿠키를 차단할지 말지를 결정하도록 만들겠다고 밝힙니다.
이는 구글이 원했던 결정이 아닙니다. 시장의 압력에 굴복해서 내린 속쓰린 결정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은 약속을 뒤집은 것 처럼 보이게 되어 억울한데다, 경쟁자인 애플이 이 틈을 노려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으니 화도 많이 날 것입니다. 아주 자세한 분석과 맥락은 아래 글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애플의 큰 그림
안드로이드라는 견고한 성벽에 크롬 브라우저는 작은 틈과 같습니다. 애플은 이 틈을 파고들어 성벽을 무너뜨리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마치 중세 전쟁에서 성벽의 약한 지점을 공략하듯 말이죠. 이런 전술이 애플 전체 매출을 견인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작전으로 보이며, 왜 그런지는 데이터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돈의 흐름을 봐야하는데요, 공개된 애플 2023 애뉴얼 리포트에 몇가지 재미있는 데이터들이 있습니다. 2023년 기준,
- 전체 매출에서 아메리카 대륙이 42.4%, 유럽이 24.6%, 중국이 18.9%를 차지함.
- 2022년 대비 이 세 지역 매출이 줄어들었음.
애플의 코어 시장이 어디인지를 알았으니 코어 제품이 뭔지 봐야겠습니다.
역시 2023년 기준,
- 전체 매출에서 아이폰 혼자 52.3%를 차지함.
- 맥 제품군은 매출이 큰 폭으로 줄어듬 - 이에 대해 애플은 2022년 팬데믹 기간에 폭증했던 수요가 2023년에 정상화 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음.
- 서비스 매출은 크게 증가해 이제 전체 매출의 22.2% 수준이 됨.
Apple Services
- 광고
- 애플 케어
- 클라우드
- 디지털 콘텐츠 - 아케이드, 뮤직, 뉴스, TV 등
- 결제
맥이 원래 수요 수준으로 회귀했다고 생각해보면, 아이폰과 서비스 부문이 애플의 핵심 제품이라고 봐야 합니다. 서비스 부문은 유저가 애플 하드웨어 생태계 안으로 들어온 다음부터 발생한다는 특징이 있으므로, 결국엔 미대륙, 유럽, 중국의 아이폰 점유율을 늘리는 것이 애플 매출의 원동력이겠죠.
미대륙, 유럽, 중국 시장에서 아이폰을 더 팔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기존 유저들이 기기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안드로이드 유저가 아이폰을 사용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애플은 안드로이드 유저들이 이런 결정을 하도록 이유를 제시해야 하겠죠.
미대륙, 유럽, 중국 세 시장이 정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프라이버시 입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은 가장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개인정보보호법이 자리잡았습니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프라이버시를 보호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개개인들이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지금 구글이 프라이버시에 대한 말을 뒤집은 상황에서, 애플이 상대의 약점을 콕 짚으며 주요 시장에 대한 공세를 펼치는 것이죠. 여러분은 일상에서 프라이버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나요? 아이폰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프라이버시 보호 때문인가요?
애플의 손익계산서
모든게 애플의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애플은 어떤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지 정리해보죠.
- 하드웨어 판매 증가: 특히 iPhone 그리고 Apple Watch 판매가 늘어날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 서비스 부문 수익 증가: 단말기 사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광고 수익, 애플 케어, Apple Music, iCloud 등의 구독자 수가 증가할 것입니다.
- 앱 스토어 수익: 특히 게이밍 앱들은 발생한 인앱 구매의 30%를 애플에 수수료로 지불합니다. 유럽에선 서드파티 스토어를 허용해야 하는데, 프라이버시를 강조한다면 유저들이 서드파티 스토어 사용을 망설이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소비자들은 개인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원합니다. 애플의 프라이버시 캠페인은 이런 점에서 아이폰 판매를 자극하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또한 애플 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는 의료정보에 가까운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어서 착용이 망설여지기도 하죠. 애플은 이 점에 대해서도 소비자들이 안심하도록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식으로 단말기 점유율이 높아지면 서비스 매출이 따라서 오르게 되는데, 애플의 서비스 매출은 gross margin이 70%가 넘습니다. 수익성 면에서는 하드웨어 제품군을 아득히 뛰어넘는 꿀단지입니다.
앞서 맥 수익이 27% 감소한 것을 봤는데요, 이렇듯 하드웨어는 제품 수명 주기가 있어서 수익 변동성이 큽니다. 반면 서비스 부문은 구독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포함하고 있어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으므로 애플에겐 든든한 보험 같은 역할을 합니다.
게다가 서비스 부문의 높은 gross margin은 애플이 R&D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합니다. 계속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시장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든든한 보급부대 역할을 하는 것이죠.
Art of War
애플의 프라이버시 캠페인은 단순한 마케팅 전술 그 이상입니다. 애플이 장기적인 비즈니스 성장과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과 얼라인 되어있습니다. 애플은 구글의 약점을 공략하여 안드로이드 생태계의 틈을 파고들어 아이폰과 자사의 서비스 생태계로 사용자를 유도하려 합니다.
프라이버시 캠페인은 특히 미국, 유럽, 중국과 같은 주요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이 시장에서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높기 때문에 캠페인의 메시지가 특별히 강력하게 다가가겠지요. 아이폰 판매의 증가는 서비스 부문 매출까지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입니다.
특히 서비스 부문의 높은 gross margin은 애플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변동성이 큰 하드웨어 매출의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애플이 지속적으로 R&D에 투자하고 새로운 혁신을 추구할 수 있는 여력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구독 기반 비즈니스 모델이 커지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이것입니다.
애플의 프라이버시 캠페인은 단기적 매출 증대뿐만 아니라 장기적 시장 지배력 강화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하는 전략적 움직임일 것입니다. 프라이버시 캠페인을 단순히 구글의 광고 생태계만을 노린 응수로 보아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